그늘의 계절 독서 감상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추리소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몇년간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일본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추리소설들을 쏟아내는지 직접 보고 느꼈다.
수많은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거의 매주 TV를 통해 재방송을 포함해 4-5편의 추리 관련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미스테리 극장을 한 편씩 또는 최대 11편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로 구성하여 방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들이 핵심 주제로 다루어집니다. 각 에피소드에서는 보통 적게는 세, 네 명의 인물이 사망하며, 범인은 대개 인물들이 잘 알고 있는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스토리라인입니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은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비록 많은 미스테리와 추리 소설들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기도 하지만, 일본 추리소설의 한국어판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많은 우수한 추리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이며, 오래간만에 ‘요코야마 요이치’ 같은 작가의 작퐁을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그늘의 계절’은 제가 기존에 보고 알고 있던 추리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대부분의 TV에서 방영되는 추리소설 드라마들이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경찰 조직 내부의 경쟁과 갈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또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구성 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면을 찾아볼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늘의 계절’은 단순히 몇 가지 이야기가 모인 단편집이 아닌, 조직 내 수직관계가 미묘하게 얽혀있는 복잡한 인간 드라마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독립된 이야기로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큰 서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조직 내 경쟁과 갈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깊이를 더합니다.
<그늘의 계절>에는 인사계 담당 ‘후타와타리’와 ‘오사카베’의 인사이동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 조직사회의 공기가 물씬 풍기며, 읽는 동안 저도 저의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이 떠올라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시청과 관련된 협회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오사카베’가 겪는 퇴직 후 임기 연장과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저로서는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사카베’가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유로 그만두지 않으려는 상황, 그리고 ‘후타와타리’가 그를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반전 역시 이야기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땅의 소리>에서는 인사 철을 앞두고 감찰관 ‘신도’가 발견한, Q서 생활안전과장 ‘소네 가즈오’와 PUB 무무의 마담 사이의 관계를 폭로하려는 워드프로세서 문서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내부 조사와 술수는 경찰 조직의 복잡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특히 이 이야기는 결국 자작극이라는 뜻밖의 전환을 맞이하는데, 이 과정에서 ‘후타와타리’의 철저한 조사를 피해가지 못하고 승진 기회를 잃어버리는 ‘신도’의 안타까운 사연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신도’의 캐릭터를 통해,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직면할 수 있는 조직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일으키게 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검은 선>은 여경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계장 나나오 도모코는 최근 범인의 몽타쥬를 정교하게 그려 공을 세운 미즈호를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도모코는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몽타쥬가 과장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역시 예리한 ‘후타와타리’ 조사관의 눈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가방에서 ‘쓰게’는 의원들의 질문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우가이’ 의원과 대립한다. 우가이 의원은 경찰에 대한 폭발적인 발언을 예고만 하고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결국 ‘쓰게’는 우가이 의원의 가방에서 서류를 훔쳐보지만 중요한 정보를 찾지 못한다. 사건은 폭발적인 발언 없이 조용히 마무리된다. 하지만 ‘쓰게’는 가방 도난신고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고 씁쓸해합니다.
조직내의 치밀함과 또 한편으로는 비열함까지 전해져오는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쓰며 책을 읽은 재미가 있어 기분이 좋았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자면, 매우 특이한 구성에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전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쉬운일은 아니지만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다가온다.